나와 파트너가
방치된 개를 구조했던 일을
글로 써보려 한다.
이것은
그 첫날의 이야기이다.
본 글에 사용된 예시 이미지는
실제와 다르며, 단순 이미지입니다.
어느 날,
나의 파트너가 이렇게 말했다.
"개를 구조하러 갈 거야."
사실, 나의 파트너 주변에는
복잡한 사정을 지닌
동물들이 있다.
사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적기 어렵지만,
여하튼 나의 파트너는
이전에도 방치된 개를
구조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개 구조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줘.
나도 도우러 갈게."
라고 했고,
파트너는
'도움이 필요해'라고
답해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구조대가 결성되었다.
파트너와 나는
개를 구조하여
직접 임보를 할 생각이었다.
우리는 먼저
필요한 개 용품을
잔뜩 샀다.
그리고 개가 방치되어 있는
장소로 향했다.
...
그 문제의 장소는
작은 화장실이었다.
오래된 상가 건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변기 하나만 설치되어 있는
좁은 화장실이었다.
나와 파트너는
화장실에 천천히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점점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딱,
작은 동물이
문을 긁는 있는 소리.
그런 소리였다.
아,
이 안에
개가 있구나.
긴장되었다.
나는 이동장을 꺼냈고
파트너는 문 손잡이를 잡았다.
"열게."
파트너가 문을 열었다.
복도가 비좁았기 때문에
나는 화장실 안을 보지 못한 채로
열린 문 뒤쪽으로 낑겼다.
파트너에게 "안에 어떤 상태야?"
라고 물었는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파트너는 내부를 보고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문 뒤를 겨우 빠져나와서
직접 내부를 볼 수밖에 없었다.
...
안은 끔찍했다.
바닥에 가득한 배변,
오래된 갈색 물,
파리...
그 한가운데에
털이 길게 자란
개 한 마리가 있었다.
개는 사람이 반가운지
꼬리를 치고 있었고,
그 털 사이로는
벌레들이 날아다녔다.
문 안쪽은
개가 바로 뛰쳐나오지 못하도록
사람 무릎 높이의 상자로
막혀 있었다.
아까 났던 소리는
개가 그 상자를
긁는 소리였던 것이다.
'이 개는 사람을 얼마 만에 본 걸까?'
...
나와 파트너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개를 안아 들어
이동장에 넣었다.
고맙게도
개는 순순히 이동장에 들어갔다.
굶어서 힘이 없는 것인지,
원래 순한 성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개가 든 이동장을 들고
나와 파트너는 택시를 탔다.
우리의 첫 행선지는
애견 미용실이었다.
이동하면서,
나는 파트너에게 물었다.
"미용실보다는,
동물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파트너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지금 병원에 가도 의사 선생님이
상태를 못 봐주실 거야.
보통 털을 정리하고 가야
진료를 할 수 있거든."
아하.
파트너는 역시
방치견 구조 경험자라
노하우가 있구나.
그렇게 우리는
애견 미용실에 도착했다.
그곳은 생각보다
외관도 내부도
화려한 곳이었다.
한마디로..
비용이 몹시 비싸보였다.
ㅠㅠ
하지만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대부분의 미용실은
당일 예약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족히 3개월은
예약이 밀려있었다.
우리는 그저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어본
미용실에서
당일예약을 받아주어
감사할 따름이었다.
파트너는
미용 선생님께
개가 든 이동장을 건넸다.
미용 선생님은
비장한 표정이었다.
"전화로 얘기 들었습니다.
저희가 잘해보겠습니다."
선생님들이
개를 여러 번 확인하고,
미용 안내를 해주셨다.
"개가 참 순하네요.
걱정 마세요."
"목욕이 불가능해요.
털 먼저 잘라볼게요."
"가위가 안 드는데
5mm로 미는 것이 좋을 듯해요.
괜찮으신가요?"
이에 파트너와 나는
선생님들의 의견을 따랐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개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해요.
그리고
미용 선생님과 개는
미용 시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미용이 진행되는 방은
통유리로 되어있었다.
보호자가 로비에서 미용을
지켜볼 수 있는 구조였다.
창 너머로
미용이 시작되는 게 보였다.
마침내 개가 이동장에서 꺼내졌다.
...
개의 상태 때문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
'저 개가
우리 개구나.'
처음으로 '우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박혔다.
털에서 벌레가 나오고 있는
우리 개.
사람과 오래 있어본 적이 없어서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법을
모르는 우리 개.
이제 이 개를
나와 파트너가 책임을 지는구나.
그래서였나,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밖에 나가서
볼 일을 조금 봤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미용실의 연락을 받았다.
"미용, 목욕 다 끝나갑니다.
슬슬 오세요."
..
도착해 보니
우리 개는
미용이 끝난 기념으로
화사한 조화 사이에서
사진을 찍히고 있는 중이었다.
'얘가 우리 개라고..?!'
더러운 털이 다 사라지니
정말 다른 개 같았다.
미용실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개가 깨끗해진 것에 놀랐다.
그것도 있지만,
개가 생각보다 더
말라있어서
모두 놀라는 중이었다.
물론 개도 놀란 상태였다.
아마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을 테니.
미용실에 있는
모든 포유류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ㅋㅋ
미용 선생님은
"조금이라도 구조가 늦었으면
얘는 굶어 죽었을 거예요.
이제 이 아이는
두 분 께서
키우실 거죠..?"
라고 물으셨고
나와 파트너가
"네."라고 대답했다.
(사실 임보지만...)
아마
미용선생님은
개 용품으로 가득 차있는
우리의 장바구니를
슬쩍 보신 듯했다.
그래서일까?
키운다는 우리의 대답을
납득하신 것 같았다.
그제야 선생님은
미용 중에 있었던 일들을
사진과 함께
설명해 주시기 시작했다.
1. 털에서 벌레가 많이 나왔습니다.
진드기는 아니고 날벌레.
2. 얘가 위를 볼 줄 모릅니다.
이건 점차 나아질 거예요.
3. 성별은 남자애입니다.
나이는 대략 1~2살에 중성화는 X.
4. 미용 중간에 갑자기 똥을 쌌습니다.
그동안 참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5. 캔사료는 먹었는데
흥분해서 간식은 안 먹었습니다.
6. 얘가 걸어 다닌 적이 없어서
발바닥이 너무 부드럽습니다.
발바닥이 찢어질 수 있으니
당분간 산책은
안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7. 발톱이 길었어서..
....
....
순식간에
대량의 정보가 쏟아졌다.
이 많은 정보량을 얻어낸
선생님도 대단하시고,
미용(이라는 3시간에 걸친 사투)
을 받은 우리 개도 대단했다.
그렇게
(역시나 비쌌던) 비용을
결제하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미용 선생님들 여럿이
출입구로 우르르 나오셨다.
"미용하러 또 와주세요.
이 친구가 변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
라며 모두
따뜻하게 배웅해 주셨다.
'저도 보고 싶어요...'
또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개 용변 탈취제를
서비스로 하나 건네주셨다.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미용실을 나서니
어느덧
시간이 저녁이었다.
우리는 깨끗해진 개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 하지만
우리는 긴장을
놓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와 파트너의 집에는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18살에,
깐깐한 성격을 지녀,
평소 별명이 '시어머니'인
녀석이기 때문이다.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시어머니(?) 생각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는 것인가...?
두 인간은 논의 끝에,
이렇게 정했다.
'오늘은 절대
이 둘을 마주치게 해선 안된다.'
우리는 개를 넣은 이동장을
등 뒤로 숨겨 들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가장 안쪽 방으로 돌진했다.
.... 스파이가 된 기분이었다.
(도대체 무슨 스파이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리는
안쪽 방에서 문을 꼭 닫고
개를 이동장에서 꺼내주었다.
아직까지
고양이의 반응은
평상시와 똑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개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럼 개는 어쩌고 있나 보니
... 뭔가 불안해 보였다.
물론 인간들도
정신없는 상태였지만.
일단
사료와 물을 줘야겠다고
나와 파트너는 생각했다.
새로 산 사료를
그릇에 부어주니,
녀석은 무척 잘 먹었다.
한 그릇 더 줬다.
"녀석, 잘 먹네."
"또 줄까."
....
... 정신 차려 보니
세 그릇이나 먹여버렸다.
너무 잘 먹어서
계속 주고 만 것이었다.
아...
근데도 배고파하다니.
그동안 많이 굶었구나.
이번에는 간식을 건네보았다.
그런데 녀석은 사람 손에서
간식받아먹는 법을
모르는 듯했다.
나중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방치된 개들은
사람이 손으로 주는 걸
먹는 방법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의 인간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이 개가 단순히 먹을걸 보고
흥분한 줄만 알았다.
녀석이 밥과 간식만 보면
과하게 짖는 것 때문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행동도
방치되고 굶었던
경험 때문인 듯하다.
'흠.. 그럼
노즈워크를 하면
진정되지 않을까?'
싶어서
파트너와 나는
간식과 사료를
강아지 침대와 바닥 곳곳에
흩뿌려주었다.
역시나 너무 잘 먹었다.
다 먹고 좀 짖긴 했지만.
그렇게 먹이고 나니,
'그럼,
똥.. 오줌은..?'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었으니 싸야 하는데,
혹시 긴장해서
아무것도 못 싸면 어쩌지?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니...
우리는 매번 한 치 앞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털 더러우니까 → 일단 털 잘라.
배고파하니 → 일단 먹여.
먹었으니까 → 일단 싸야 돼.
ㅋㅋㅋ
하...
걱정이 된 나머지,
결국 파트너와 나는
개가 있는 방의 바닥에
이불을 깔고
교대로 자기로 했다.
파트너가 먼저 3시간,
그 후로 내가 3시간,
이렇게 말이다.
개를 안정시킬 겸,
이상이 없는지
관찰하기로 했다.
릴레이 근무(?)라는
형태를 띠게 된 건
파트너와 나는
디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범한
한국의 회사원이기에..)
허접한 척추로
3시간 넘게
방바닥에서 잘 수 없었다.
ㅠㅠ
일단,
파트너가 먼저
개가 있는 방에 들어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때 녀석은
잘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한다.
바닥에 누워있는
파트너의 주변을
그저 서성거렸다고.
녀석은
불안했거나, 어색했거나,
둘 다였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3~4시간이 지났다.
이제 내가 개 옆에서
잘 차례가 왔다.
방에 들어가 보니,
개는 패드에 대소변을
잘 본 상태였다.
다행이었다.
이제 이 녀석이
자기만 하면 되는데...
이 개를
잠재울 방법이
딱히 생각나지 않아,
나는 누워서 꼼짝 않고
자는 척을 해보기로 했다.
그러자
개가 내 손을
킁킁거리며
핥거나 살짝 깨물었다.
'쓰다듬어달라는 건가?'
하지만 쓰다듬으면
우리 둘 다
못 잘 것 같았다.
나도, 얘도
한숨도 못 자면
어떡하지..?
사람도 불안하면 못 자는데
개도 그렇지 않을까?
그럼 내일 일정은
어떡해?
점점 불안해지는데...
...
.......
안돼.
'이 집에 있는
모든 포유류들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야 한다.'
라는
생각이 갑자기 밀려들었다.
... 도대체
뭔 마음이었던 걸까?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ㅋㅋ
하지만 그땐 정말
머릿속엔 이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꿋꿋이 자는 척을 했다.
ㅋㅋㅠㅠ
...
2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실눈을 뜨고 보니
개가 내 허리께에서
주저앉아서 졸고 있었다.
녀석, 설마...
누워서 자는 법을
모르는 건가?
아니면 졸음을
참고 있는 건가?
긴가민가한데
다시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개가 쓰러지듯
눕는 소리가 들렸다.
'아. 드디어 자는구나.'
나의 옆구리에
녀석이 기댄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나는 안심했다.
이제 날이 밝으면...
파트너와 함께
이 녀석을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 솔직히,
우리 개가
어떤 건강 상태일지
두려웠다.
심장사상충.
복막염.
슬개골 탈구.
..
이 중 하나는
무조건 있지 않을까.
수술해야 할까?
그럼 돈은?
회사일은?
...
두려움에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그래도...
힘내보자.
지금은 잘 자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이 개와의
첫날이 끝났다.
이 이야기는 글쓴이의 실제 경험입니다.
실제 인물, 단체, 업체가 특정되지 않도록 각색해서 작성하였습니다.